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스테판 메르키 연출가(왼쪽)와 크리스티나 콤테세 협력 연출가 [국립오페라단 제공]
“K-드라마를 보면 패션 디자이너들이 동대문 시장에서 원단을 구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이번에 마침내 가보게 됐죠. (웃음)”
블랙 매니큐어에 각양각색 은색 반지와 팔찌, 가죽 재킷을 착용한 필립 바제너는 패션 매거진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힙’함을 장착한 독일 의상 디자이너다. 그가 한국에 오자마자 향한 곳은 바로 동대문 시장. 르네상스와 시대를 알 수 없는 미래를 오가는 의상을
한국릴게임 만들기 위해서다.
고풍스러운 굴곡은 중세의 한복판이면서도 금방이라도 우주선에 올라타야 할 것처럼 전위적이다. 둥그런 어깨는 우주를 유영하는 행성 같고, 상반신을 가두는 나무 뼈대는 감옥 안에 갇힌 이졸데(‘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여주인공)를 연상케 한다.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의상을 맡은 바제너 디자이너는 “
바다이야기사이트 독일에서 스케치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동대문으로 향했다”며 “엄청나게 많은 원단이 있는 보물창고였다. 이틀 밤을 새워서 오페라에 필요한 비건 레더, 네오프렌 원단 등 다양한 소재를 구했다”며 활짝 웃었다. ‘대작의 습격’이다. 연말 성수기에 돌입한 공연계에서도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4일부터 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국
야마토게임예시 내 관객과 만난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향이 공동 제작하는 이번 무대는 ‘바그너 전문가’인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은 물론, 국내외 바그너 오페라 전문가들이 총출동했다.
연출가 “이번 작품 ‘이졸데’라 불러도 좋아”
한국 초연의 역사적 서막을 여는 슈테판 메르키 연출은 “아름다운 도시 서울, 한국에서 극장을 일하는
릴게임추천 사람들과의 협업 과정은 정말 환상적이고 큰 영감을 주는 경험”이라고 했다. 바제너 디자이너도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멋진 트렌드와 바이브가 넘치는 곳”이라고 말을 보탰다.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자신의 약혼자를 살해한 남자(트리스탄)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이졸데). 독일 켄트 신화를 바탕으로 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의 완
야마토게임연타 성은 곧 죽음이라는 관점을 담고 있다.
메르키 연출가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복합적이고 까다로운 작품인 데다 수많은 경계를 초월하는 대작”이라며 “현 시대에 어떻게 보여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에 원작 속 바다는 우주로, 트리스탄의 배는 우주선으로 치환됐다.
“우주라는 공간적 배경은 보편성과 맞닿아있어요. 사랑과 자유의 이미지, 탈경계를 담기에 좋은 그릇이죠. 끝없는 갈망을 상징하면서도 이는 영원한 유토피아로 연결됩니다.”
바그너와 달리 메르키 연출가는 사랑의 완성을 ‘유토피아’로 봤다. 그러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은 ‘실패한 것’이 아닌 ‘보편적 사랑’으로 승화된 것이다.
메르키 연출가는 또 “이번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냥 ‘이졸데’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한다. 그는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 여성의 희생을 통한 구원, 초월적 사랑을 끊임없이 노래했던 바그너의 여성관과 사랑관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해석을 제안한다.
그는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이졸데는 가부장적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며 주체적인 행위를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며 “이졸데의 자살은 죽음이 아닌 유토피아에 대한 선택이다. 이는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나와 낭만주의 사랑을 실현하고 주도적 삶을 살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가부장적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의 현실에 빗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필립 바제너 의상 디자이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공연 의상을 점검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의상 디자이너 ‘파격에 파격’…‘대작’ 오페라의 재탄생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현대적 감각의 연출에 트렌드의 최전선에 선 의상 디자이너를 만나 새롭게 태어났다. 파격에 파격을 더한 셈이다.
스위스 출신 슈테판 메르키 연출가의 바그너 오페라는 이번이 세 번째다. 그는 2023년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독일 코트부스 국립극장 무대에서 올렸다. 한국에서 선보일 작품에선 완전히 새로운 팀과 함께한다. 메르키 연출가는 “한국에 오기 전 오랜 시간 서울을 탐구했다”며 “굉장히 역동적이고 트렌드를 잘 알고 있는 곳이라 이 무대를 함께 구현할 팀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했다”고 돌아봤다.
그가 선택한 디자이너는 바로 필립 바제너. 바제너는 메르키 연출가가 극장장으로 있는 코트부스 국립극장에서 6개 작품을 올린 드래그 아티스트(Drag Artist, 특정 젠더를 과장되게 재현하는 예술가)이자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 성 정체성이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으로 전환되는 젠더) 디자이너다. ‘트리스탄 이졸데’는 두 사람의 첫 협업이다. 메르키 연출가는 “그동안의 예술적 행보를 지켜봤기에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뭔가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출가의 해석은 이졸데의 의상을 통해 시각적 완성도를 더했다. 바제너 디자이너의 경우 오페라 의상은 두 번째이나, 바그너 오페라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바제너 디자이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혐오와 전쟁, 사랑과 아름다움을 예술을 통해 보여주고, 사랑이 없다면 미래에 대한 염원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며 “그 점을 가장 염두하고 의상을 디자인했다”고 귀띔했다.
대부분의 의상은 오페라가 머무는 우주적 공간을 상징한다. 그는 “우주적 환경이라는 콘셉트는 의상 디자인에 엄청난 자유를 줬다”며 “무한한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실루엣에 공상과학 요소가 더해지고, 회색과 검은색으로 우주를 입혔다.
강인함을 보여줄 군복 스타일의 드레스도 바그너의 메시지를 드러낸 부분이다. 이졸데의 첫 드레스에 쓰인 시스루 소재는 “층층이 쌓인 보호막을 의미”하고, 또 다른 드레스의 어깨에 장식된 나무 뼈는 일종의 새장 역할을 한다. 이 드레스는 ‘스켈레톤 드레스’로 부르고 있다.
의상의 콘셉트는 ‘대비’다. 그는 “인물의 내면과 사회적 억압의 대비, 원작의 고전적 실루엣과 현대적 소재의 대비를 강조했다”며 “극 후반부로 갈수록 액체가 흐르는 듯한 표현을 가미해 새로운 세계를 마주했을 때 순간의 감정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바제너가 스스로 규정하는 정체성은 이번 오페라에도 투영됐다. 그는 “나의 작업은 종종 성별 같은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다른 세계적이고 외계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왔다”며 “나는 퀴어 젠더플루이드 아티스트라 내 예술은 자연스럽게 퀴어한 색을 띤다. 그건 내가 몸과 성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5시간 40분 공연…악단·지휘자·성악가 구인난
국내에서의 바그너 오페라는 걸음마 단계다. 워낙 거대한 편성인 데다, 바그너를 제대로 연주할 악단과 지휘자는 물론 연출가, 성악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지난해 요나김 연출가의 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를 비롯해 ‘파르지팔’(2013), ‘방황하는 네덜란드인’(2015), ‘로엔그린’(2016) 등이 무대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막 공연이 기대되는 것도 국내 최정상 악단인 서울시향과 그 악단의 음악감독, 해외 유수 연출진과 국내외 성악가가 함께하는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초연에 5시간 40분에 달하는 대장정인 만큼 ‘오페라 애호가’들도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다. 90분씩 총 3부, 두 번의 인터미션이 포함되는 긴 오페라이다 보니 적어도 공연 전날 충분한 숙면과 허리 운동을 해둔다면 도움이 된다.
메르키 연출가는 체력 확보와 더불어 예습도 추천했다. 그는 “약 4000년 전, 연극은 종교적 의식에서 시작됐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의식적 성격을 지닌 예술 형식”이라며 “바그너 역시 극장의 ‘의례적 성격’에 대해 많이 탐구했다. 의식에는 때로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그 끝에는 육체적 필요를 넘어서는 경험이 따라온다. 바그너 음악이 마약처럼 몰입적인 이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리 시간을 들인 관객일수록 공연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더 깊이 즐길 수 있다”며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수년째 듣는 나도 들을 때마다 새로운 깊이와 연민의 층위를 발견한다”고 했다.
특히나 바그너는 이 작품에서 고전, 낭만 시대의 조성 체계를 뒤집은 ‘트리스탄 화음’으로 현대음악의 시작을 알린 만큼 ‘첫 곡’ 정도는 미리 듣고 가는 것도 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꿀팁이다.
바제너 디자이너는 ‘편안한 마음과 열린 자세’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이 작품의 시각적 세계와 놀라운 음악이 만드는 전체적인 경험을 열린 마음으로 즐기길 바란다”며 “음악이 정말 유려하게 구성돼 있어 마치 멈추지 않는, 어떤 나선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분위기에 마음을 열면 음악이 깊숙이 빨려들게 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릴 것”이라고 했다.
고승희 기자 기자 admin@no1reelsi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