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영 셰프의 요리 인생은 어린 시절 주방에서 시작됐다.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요리하는 걸 즐겼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요리의 길을 택했다. 1990년대 초에는 조리사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기관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외국 신문에 실린 셰프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는 확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 셰프의 위상이 달라질 거라고.
유희영 셰프
골드몽게임
이에 그는 서울 종로5가의 작은 요리학원에서 일식 과정을 수료하고 1992년 하얏트호텔에 입사했다. 다음 해 르네상스호텔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으로 특급호텔 주방의 세계에 들어섰다. 20대의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낸 그는 수많은 선배의 손끝을 지켜보며 기본기를 다졌다. 그때는 하루하
백경게임 루가 배움이었다. 요리보다 ‘사람’을 배우던 시절이었고 주방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태도를 배우는 공간이었다.
1999년 가을 그는 LG유통(현 아워홈)에서 운영하는 오리엔탈 레스토랑 ‘실크스파이스(Silk Spice)’의 헤드 셰프로 자리를 옮기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이곳에서 그는 ‘퓨전일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황금성릴게임 접했다. 그 시절엔 ‘퓨전’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하지만 그는 전통 일식의 정갈함 위에 한국적인 맛, 서양식 풍미를 올리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그곳에서 그는 세상에 없던 요리들을 만들어냈다. 야키우동, 참치 다다키, 아게도후와 조갯살, 갈릭 스테이크 등 그가 개발한 메뉴는 당시 요식업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 셰프는 재료의 조합을 통
바다이야기무료머니 해 새로운 맛을 만드는 게 즐거웠다. 처음에는 “이게 뭐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유 셰프는 이를 창작의 재미로 여겼다. 이후 그는 퓨전일식의 세계적 거장 마쓰히사 노부유키 셰프를 멘토로 삼았다. 노부유키 셰프의 ‘노부(NOBU)’를 직접 보려고 뉴욕까지 갔다. 그때 그는 요리에는 국경이 없고 문화와 감성을 담는 게 요리의 본질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야마토통기계 2008년 신사동 가로수길에 ‘유노추보(Uno Chubo)’를 연 뒤 그는 대중적인 일식 레스토랑의 선구자로 불렸다. 당시만 해도 일본 요리는 고급 레스토랑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그는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일식을 선보였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호텔과 외식업 현장을 오가던 그는 여의도에 ‘키보 락앤롤’을 열며 다시 한번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함께 오랜 인연을 이어온 남준영 셰프와의 협업으로 완성된 공간이다. 키보 락앤롤은 이름부터가 이색적이다. ‘키보’는 일본어에서 따온 말로 ‘희망’을 뜻한다. 용산에 처음 키보를 오픈했을 때 매장을 다녀가는 손님들이 희망을 얻었으면 한다는 작은 바람으로 키보라고 이름을 정했다. 일상의 작은 순간, 소소한 행복들이 고객들의 희망이 되듯, 키보의 음식을 통해서 희망을 안겨주는 따스함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락앤롤’을 통해 자유와 희망을 전하고자 했다. 유 셰프는 레트로풍의 인테리어와 옛날 감성의 음악, 세련됨보다 투박한 식기들을 사용한다. 레트로풍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옛날을 흉내 내는 게 아니다. 손님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온기를 담고 있다.
점심에는 ‘등심 돈카츠’ ‘락앤롤오무라이스’ 등 경양식 메뉴로 구성되고, 저녁에는 ‘게장 사시미’ ‘모츠나베’ ‘항정살 호우바야끼’ 같은 일본풍 안주와 다양한 주류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낮에는 따뜻한 식사 공간, 밤에는 편안한 술자리로 변신한다.
등심 돈카츠
키보의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등심 돈카츠’다. 두툼한 국내산 등심을 누룩소금에 마리네이드해 고기의 풍미를 깊게 배게 한 후, 고온의 기름에서 단시간에 튀겨낸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가득하다. 고기와 튀김옷 사이에 생기는 얇은 공기층 덕분에 씹을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난다. 유 셰프는 돈가스를 단순한 ‘튀김 요리’로 보지 않는다. 그는 “겉은 바삭하지만 속살은 부드러워야 한다. 마치 음악의 리듬처럼, 강약이 있어야 맛이 살아난다”고 강조한다.
게장 사시미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게장 사시미’로 저녁 시간 단골손님들의 필수 주문 메뉴다. 간장게장의 깊은 감칠맛에 신선한 흰살생선회를 곁들여 짠맛과 단맛, 바다의 향이 한꺼번에 터지는 독창적인 요리다. 게장은 국내산 암꽃게만을 사용해 직접 담근다. 간장의 풍미가 살짝 스며든 게살은 부드럽고 진한 감칠맛을 낸다. 숙성 사시미를 곁들이면 맛의 밸런스가 완벽하게 어울린다. 게장과 회를 같이 내는 건 보기 힘든 조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게장의 맛을 좋아하기에 한국적인 감성을 일본식 플레이팅에 담았다. 게장 사시미는 단순한 퓨전이 아니라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새로운 일식의 해석인 셈이다.
유 셰프는 요리를 단순히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요리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인 만큼 늘 재료를 다룰 때 진심을 담는다. 그는 늘 주방을 ‘무대’라고 표현한다. 셰프는 조명 아래에서 음식을 만드는 배우와 같고, 고객은 그 문화를 즐기기 위해 오는 관객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유 셰프는 늘 공연하듯 요리를 한단다.
그의 신조는 단순하다. ‘맛있는 것만 고객께 제공하자’이다. 이 한 문장이 30년 넘게 그를 주방에 서게 만든 힘이다. 그는 여전히 새로운 요리를 구상하고 있다. 끝까지 감각을 잃지 않는 셰프로 남고 싶고, 자신의 음식을 좋아해 주는 고객을 위해 늘 새로운 브랜드와 메뉴를 구상하려고 노력한다. 여의도의 작은 레트로 공간 키보 락앤롤. 그곳에는 한 시대를 건너온 셰프의 철학과 음악적 리듬, 그리고 세상을 향한 ‘요리의 한 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