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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애를 안 낳아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저출산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던 정부 당국자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천진한 얼굴로 말했다. 인구 감소 추세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정책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도무지 왜 아이를 안 낳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우리 아들 낳은 거예요.” 자신 역시 공부하고 일하느라 바빠서 본인의 어머니가 대신 키워주셨다면서, 아기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매 순간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며 일단 낳아보면 알 거라고 했다. “누가 아기 예쁜 걸 모르겠어요. 하지만 출산 준비하고, 임신하고, 육아휴직하면 최소 2년가량 업무 공백이 생기는데
주식투자베스트비법 저는 그게 너무 싫어요. 저한테도 대신 애 낳아주고 키워줄 와이프가 있으면 세 명도 낳겠네요.” 웃으면서 말했더니 아마도 농담인 줄 알았던지 그녀는 “정부가 돈을 주면 낳을 것 같아요? 얼마나 주면 낳을까요?”라고도 물어봤다. 나는 거대한 벽 앞에 선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키울 돈이 없어서 안 낳는 게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생존이 위협받으니까 안 낳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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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같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등장인물 가운데 여자들만 하나둘씩 갑자기 사라지는 공포영화. 한창 바쁘게 일하던 여자 선배들은 출산과 육아휴직 기간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을 제외하고도, 난임 시술 또는 육아를 위해 상대적으로 덜 바쁜(덜 빛나는) 부서와 직책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곤 했다. 커리어 측면에서 좋은 제안을
주식매도 받아들이고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뺄 수 없어 거절하거나, 육아를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출산 경험이 없었으니 나는 그저 안타까웠다. 아이를 낳았다는, 또는 낳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존재감이 약해지거나 직장에서 사라지는 남성은 없으니까.
그래서 아기를 왜 안 낳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늘 “마흔쯤 되
인터넷야마토릴게임 면 생각해 보려고요”라고 말했다. “애를 낳고 싶은지 아닌지 확신이 없어서요. 가임기의 끝물까지 더 생각해 보고 그때 낳고 싶으면 난임 시술 받죠.” 안 낳는다고 하면 무슨 잔소리를 더 들을지 모르니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속으로는 안 낳고 싶은 마음이 80%였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애는 무슨. 당장 해내고 싶은 그날그날의 목표가 층층으로
도화엔지니어링 주식 쌓여 있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을 때 낳아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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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재작년 여름 안면마비가 왔다. 기동팀장을 마치고 대통령실 출입을 발령받은 지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토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귀가 유난히 아팠다. 평소 관자놀이가 아픈데 두통이 신기하게 왔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요일이 되자 혀가 얼얼했다. 코로나19인가? 자가 키트를 해봤는데 음성이었다. 땀이나 빼자 싶어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돌아와 물을 마셨는데 주르륵 흘러내렸다. 거울을 봤더니 오른쪽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할 때 늘 그렇듯 웃음부터 났는데, 눈이 평소처럼 반달로 작아지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부릅뜬 채 바라보고 있었다.
안면마비는 뇌신경 질환과 바이러스 감염, 외상 충격 등 명확한 마비와 원인 불명의 ‘벨마비’로 나뉜다. 나는 후자였다. 대개 과로나 스트레스, 수면 부족, 정신적 충격 등을 받은 뒤에 증상이 발현되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고용량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은 대로 초기부터 복용했지만, 근전도 검사결과 손상률이 90%가 넘었고, 눈과 입가는 98%에 육박했다. 이 정도면 회복에 6개월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 알 수 없고,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좋다는 병원을 부지런히 예약해 치료를 받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눈꺼풀이 끝까지 닫히지 않아 테이프를 붙이고 잠들어야 했다. 이 얼굴로 방송기자를 계속 할 수 있을까?층층이 쌓여 있던 모든 목표가 녹아 사라졌다. ‘어차피 안 되겠네’라는 마음과 ‘그거 다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내가 그동안 서 있을 수 있도록 지지해 준 토양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내가 딛고 있는 지반, 가족, 나의 울타리가 한층 단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난임 병원을 예약했다.
운 좋게도 시험관에 성공해서 지난해 아기를 낳았다. 과연 듣던 대로, 10배 힘들고 100배 행복하다. 너무 귀엽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일찍 낳을 걸! 하지만 시간을 돌려 30대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덥석 임출산의 길로 들어서지는 않을 것 같다. 안면마비라는 더 큰 공포가 닥쳤기에 그 막연하고 거대했던, 출산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감을 잊을 수 있었다. 공포나 불안의 감정을 앞뒤로 잴 필요없이 마음 놓고 임신 · 출산할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처럼 ‘돈 주고 휴가 줄 테니 여자들아, 집에서 애 낳고 길러라’라는 식으로 여성에게만 돌봄 노동을 전가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어쩌면 이 장면 자체가 공포 영화다.
「 심수미 」
제48회 한국기자상 대상과 제14회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한 JTBC 기자. 30여 년간 인권의 사각지대를 취재한 수 로이드 로버츠의 〈여자 전쟁〉을 번역했다.